이사야 6장, 7장, 8장, 9장 | 권민철 | 2022-06-17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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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으로 만난 하나님”(164강) : 이사야6장 -9장 ※ 이사야 6장 이사야 예언자의 ‘소명 장’으로 알려진 본문입니다. 이사야는 웃시야 왕이 죽던 해에 하나님의 성전에서 ‘소명’을 받습니다. 웃시아 왕은 백성들에게 축복을 상징하는 강력한 왕이었습니다. 그가 죽었다는 소식은 백성들에게 큰 충격과 절망을 안겨다 주었습니다. 이때 이사야는 “내가 왕을 보았다”라고 말합니다.(5절, 개혁개정) 이 말은 ‘웃시아’ 왕보다 더 크신 만군의 하나님, ‘우주의 왕’을 보았다는 뜻입니다. 이는 왕이 세상을 다스리는 것 같지만 궁극적으로 하나님이 세상을 다스린다는 의미가 함축되어 있습니다. 주님의 보좌 주변의 스랍들이 우주의 왕 앞에서 “거룩하다”를 외칩니다.(3절) 세상의 왕과 대조되는 하나님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거룩하신 하나님을 만난 이사야는 자신이 부정한 존재임을 깨닫습니다.(5절) 하나님을 만난 사람의 정상적인 태도입니다. 이때 한 스랍이 준 숯불을 입술에 대면서 이사야는 스스로를 정결하게 합니다.(6-7절) 회개를 상징합니다. 그런 후에 이사야는 “내가 누구를 보낼까?”라는 주님의 부르심 앞에 “제가 여기 있습니다. 저를 보내어 주십시오.”라고 응답합니다. (8절) 소명을 받는 순간입니다. 부르심을 받은 이사야의 소명은 듣지 못하고 보지 못하는 무지한 백성을 일깨우는 것입니다.(9-10절) 그들이 쉽게 듣거나 깨닫지 못하지만, 희망을 가지고 사역을 감당해야 합니다. “밤나무나 상수리나무가 잘릴 때에 그 그루터기는 남듯이, 거룩한 씨는 남아서, 그 땅의 그루터기가 될 것이다.”(13절) 이것이 이사야의 희망입니다. ※ 이사야 7장 이제 이사야가 예언자의 길을 걷게 된 결정적인 사건이 나옵니다. 여기서 참고로 웃시아 왕이 죽자 그의 아들 ‘요담’이 짧은 기간 통치를 하였고, 그후 요담의 아들 ‘아하스’가 유다를 통치하게 됩니다. 이때 ‘앗시리아’ 제국이 유다와 이스라엘이 있는 서쪽지역으로 원정길을 나섭니다. 이때 이스라엘의 ‘베가’와 시리아의 ‘르신’ 왕이 급하게 반 앗시리아 동맹을 맺습니다.(1절) 일명 ‘시리아-에브라임’ 동맹입니다. 이들은 유다의 ‘아하스’왕에게도 동맹을 요구합니다. 하지만 ‘아하스’ 왕이 거절하자 그들은 동맹을 거절한 유다를 침공하게 됩니다. (2절) 이때 이사야는 ‘스알야숩’이라는 자신의 아들을 데리고 유다의 아하스 왕을 만납니다.(3절) ‘시리아-에브라임’ 동맹은 타다가 만 부지깽이에 불과하니 두려워하지 말 것을 전합니다.(4절) 이들의 동맹은 성공하지 못할 것임을 알려줍니다.(7절) 시리아-이스라엘 동맹에 비해 너무나 약소했던 유다는 두려움에 떨 수밖에 없었습니다. 위기의 순간 아하스 왕에게 이사야의 말은 귀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결국 그는 “징조를 구하지도 않고, 주님을 시험하지도 않겠습니다.” 라는 말로 이사야의 예언에 응답합니다.(11-12절) 하나님을 찾지 않겠다는 뜻입니다. 이때 이사야가 아하스 왕에게 선포한 말씀이 바로 ‘임마누엘’입니다.(10-17절)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며, 그가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고 할 것입니다.”(14절) 이 말씀은 처녀가 잉태하듯, 하나님을 가슴에 품으라는 뜻입니다. 임마누엘,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가슴에 품는 것이 ‘길’이며, ‘희망’이라는 선포입니다. 이 선포는 위기의 순간 때마다 인간이 품어야 할 마음이 무엇인지를 가르쳐주는 중요한 교훈입니다. ※ 이사야 8장 이사야는 아들의 이름을 ‘마헬살랄하스바스’라고 짓습니다. ‘노략이 속히 올 것이다’라는 뜻입니다. 자신의 아들의 이름에 예언의 말씀을 담은 이유는 하나님의 사랑과 심정을 아버지의 마음으로 전하기 위해서입니다.(1-4절) 5-8절에서 앗시리아의 침략을 예언합니다. 그리고 아하스 왕에게 위기의 순간 ‘임마누엘’의 놀라운 힘을 들려줍니다.(9-10절) 하나님이 함께 계심이 얼마나 놀라운 능력인지 속시원하게 들려줍니다. 9-10절을 큰 소리로 읽어보시면 힘이 나실 것입니다. 세상적인 계획이나 음모에 가담하지 말고 주님을 의지해야 합니다.(11-15절) ※ 이사야 9장 당장은 앗시리아의 위협을 어떻게 할 수 없으나 주님이 이루실 계획을 바라보자고 말합니다. 어둠이 걷히는 날이 반드시 온다는 것입니다.(1절) 하나님은 고통 없는 평안을 허락하지 않으셨고, 어둠 뒤에는 반드시 빛이 온다는 것입니다. 힘든 시기에 하나님을 통해서 희망의 빛을 보라고 말합니다.(2-5절) 그 희망을 이사야는 ‘아기’로 표현합니다.(6절) 왜 ‘아기’일까? 하나님은 힘으로 세상을 지배하지 않으신다는 선포입니다. 하나님은 강력한 힘이 아니라, 어린아이처럼 작은 힘들을 모아서 새로운 쓰시는 분이시라는 것입니다. “침략자의 군화와 피 묻은 군복이 모두 땔감이 되어서 불에 타 없어질 것이다.”(5절) 지긋지긋한 전쟁과 대비해서 이사야는 연약하고 힘없는 ‘아기’에게서 희망을 바라봅니다. 그 희망은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믿는 자들의 연대를 통해서 이루어집니다. “한 아기가 우리를 위해 태어났다. 우리가 한 아들을 모셨다. 그는 우리의 통치자가 될 것이다. 그의 이름은 ‘놀라우신 조언자’, ‘전능하신 하나님’, ‘영존하시는 아버지’, ‘평화의 왕’ 이라고 불릴 것이다.”(6절) 여기에 아기의 네 가지 이름이 나옵니다. 이 이름의 또 다른 이름은 ‘임마누엘’입니다. 8-21절까지는 하나님께로 돌아오지도 찾지도 않는 이스라엘 백성들에 대한 경고의 말씀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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