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왕기하18-22장 | 권민철 | 2021-02-18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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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이 나를 살린다”(64강) - 열왕기하18-22장 북 이스라엘에서는 위대한 예언자들이 - 엘리야, 엘리사, 아모스, 호세아 - 일어나서 나라를 세우려고 했지만 결국 무너지는 모습을 우리는 보았습니다.(BC 721년, 호세아) 이제 남 유다의 역사만 남아있습니다. 이스라엘 멸망 후 남 유다에서는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요? ※ 18장 이제 히스기야 왕이 등장합니다.(BC 727-699년) 히스기야 왕에 관한 기록은 열왕기하18-20장, 역대지하 29-32장, 이사야 36-39장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신명기 역사가는 “유다 왕 가운데 이전에도 후에도 그만한 왕이 없었다.”(5절)라고 입에 침이 마르도록 그를 칭찬합니다. 먼저 히스기야는 다윗처럼 주님 보시기에 올바른 왕이었습니다.(3절) 산당을 헐고 아세라 목상을 찍어 버리고, 오직 하나님만을 신뢰하고 주님의 계명을 준수했습니다.(4-8절) 히스기야가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어디를 가든지, 주님께서 그와 같이 계시므로”라고 그 이유를 밝히고 있습니다.(7절) ‘히스기야’에게도 ‘위기’가 찾아옵니다. 앗시리아의 ‘산헤립’이 쳐들어 온 것입니다.(13절) 히스기야는 조공을 바침으로 위기를 모면합니다.(9-12절) 계속해서 조공을 요구하자 히스기야는 반기를 듭니다. 앗시리아는 최고의 행정가인 ‘랍사게’를 앞세워 유다를 위협합니다. 유다를 점령한 ‘랍사게’는 유다의 궁내대신들에게 연설을 합니다. 연설의 내용은 ⓵ 이집트를 신뢰하는 어리석은 일을 하지 말 것(21절) ⓶ 하나님을 신뢰하지 말 것(22절) ⓷ 군사력을 신뢰하는 어리석은 일을 하지 말 것(23-24절) ⓸ 지금의 자신들의 행동은 하나님의 명령이라고 말합니다.(25절) 엄청난 신성모독적인 연설입니다. 히스기야의 궁내대신들이 랍사게의 말을 백성들이 들을까 염려하자 랍사게는 더 크게 연설을 합니다.(28절) 히스기야와 하나님을 의지하지 말 것과 자신들과 평화조약(봉신)을 맺으면 앗시리아가 하나님처럼 먹여주고 살려 준다고 말합니다.(28-35절) 이 말을 들은 궁내대신들은 울분을 참지 못하여 옷을 찢으며 히스기야에게 보고를 합니다.(36-37절) ※ 19장 국가적인 위기의 순간 히스기야가 대처하는 모습이 나옵니다. 먼저 옷을 찢고, 베옷을 두르고 주님의 성전을 찾습니다.(1절) 그리고 랍사게의 말을 들은 궁내대신들을 이사야 예언자에게로 보내어 상황 설명과 기도요청을 구합니다.(1-4절) 이사야는 ‘뜬소문’으로 하나님이 지켜주실 것을 약속합니다.(7절) 유다가 자신들의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자 앗시리아의 산헤립은 다시 사신들을 보냅니다.(9절) 그들은 하나님이 구원해 주실 것이라는 소문을 믿지 말 것과 자신들의 손에서 벗어나 구원받은 나라가 없었다고 위협합니다.(10-11절) 히스기야의 두 번째 위기 대처법이 나옵니다. 그는 사신들이 가져온 편지를 성전으로 들고 가서 펴놓고 기도합니다. 듣고, 보고, 구원해 달라고 기도합니다.(12-19절) 히스기야의 기도에 하나님은 이사야를 통해서 응답하십니다.(20-31절) 하나님께서 복수해 주시겠다는 응답입니다. ‘처녀 딸 시온’, ‘딸 예루살렘’이란 표현은 하나님이 사랑이 어떠한지를 보여주는 중요한 단어들입니다.(21절) 반드시 하나님은 회복시켜 주실 것이며, 활 한 번 쏴 보지도 못하고 물러갈 것이라고 응답하십니다.(32절) 주님의 말씀대로 천사가 나아가서 앗시리아 군인 18만5000명을 죽입니다. 앗시리아는 강력한 군사력으로 이집트까지 점령한 어마어마한 힘을 가지 나라입니다. 앗시리아에 비하면 유다는 비교도 되지 않는 나라입니다. 이런 나라의 위협 앞에 대처하는 히스기야의 모습은 오늘 우리들에게 좋은 ‘믿음의 길’이 될 수 있습니다. 또한 강력한 군사력으로 자신들의 힘을 자랑하던 앗시리아를 향해 심판을 선언한 문서 예언자가 있습니다. 바로 ‘나훔’입니다. 나훔은 앗시리아의 잔인함과 폭력성을 고발하며, 멸망을 선포합니다. 나훔서 순서에서 자세히 보도록 하겠습니다.
※ 20장 히스기아가 병에 걸려 죽게 됩니다.(1절) 앞장은 국가적 위기였다면, 이제는 개인의 삶의 위기입니다. 히스기야는 어떻게 대처할까요? 그는 주님께 기도하며 흐느껴 웁니다.(2-3절) 히스기야의 기도에 하나님은 숨 가쁘게 응답하십니다. ‘듣고, 보고, 고쳐주겠다’고 약속하십니다.(5절) 결국 열다섯 해 더 살게 되는 은혜를 입습니다. 히스기야를 보면서 ‘신앙의 힘’이 무엇인지 알게 됩니다. 위기 때에 대처하는 모습이 바로 ‘신앙의 힘’입니다. 히스기야의 위기 대처방법이 그의 장점이라면, 그의 실수도 신명기 사가는 기록에 남깁니다. 바벨론의 사절단이 히스기야를 찾아오자 궁궐안에 있는 모든 것을 사절단에게 보여줍니다. 이 행동에 대해서 이사야는 책망과 함께 이 행위는 바벨론 포로의 빌미가 될 것이라고 말합니다.(14-18절) 실제로 바벨론 사절단이 온 것은 반 앗시리아 동맹을 형성하기 위해서입니다. 히스기야가 다 보여주었다는 것은 바벨론을 의지하겠다는 뜻입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보다 눈에 보이는 도움의 손길이 순간 더 크게 보일 때가 있습니다. ‘실수’입니다. 여기서 ‘바벨론’이 처음 등장합니다. 이제 앗시리아는 점점 저물어 가고 ‘바벨론’은 강성해집니다. 다윗 때부터 이스라엘을 괴롭힌 나라들을 나열하자면 ‘블레셋 - 시리아 - 앗시리아 - 바벨론’ 순입니다. 그리고 20절에는 그 유명한 ‘실로암 터널(수로)’이 나옵니다. 앗시리아가 예루살렘을 포위하자, 히스기야는 ‘기혼 샘’에서 ‘예루살렘’까지 물을 공급하기 위해서 단단한 바위를 뚫어서 ‘수로’를 만듭니다.(533미터) 히스기야 때 뚫은 이 ‘수로’는 지금도 물이 흐르고 있고, 많은 관광객들이 찾고 있습니다. ※ 21장 히스기야의 아들 ‘므낫세’ 나옵니다.(BC 698-644년) 므낫세는 부왕 히스기야와 달리 악한 왕의 대명사가 됩니다. 므낫세는 유다 왕조에서 가장 악한 왕으로 평가 받습니다. 히스기아가 헐어버린 산당과 바알제단과 아세라 목상을 다시 세웁니다. 특별히 하나님의 성전안에 이방신을 섬기는 제단을 만듭니다. 아들을 죽여 드리는 인신제사도 드려집니다.(3-7절) 그리고 죄 없는 사람들을 너무 많이 죽었습니다.(16절) 므낫세의 아들 ‘아몬’도 아버지의 길을 따라 갑니다(.BC 643-641년) 신하들이 반역을 일으켜 왕을 암살할 정도로 나쁜 길을 걷습니다.(19-26절) ‘므낫세 -아몬’의 시대에 가장 안타까운 것은 ‘예언자’가 없다는 것입니다. 히스기야는 ‘이사야’와 ‘미가’예언자가 있었기에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므낫세-아몬’의 시대에는 ‘예언자’가 나타나지 않습니다. 그래서 학자들은 두 왕의 통치시기를 ‘유다의 암흑기’라고 부릅니다. ※ 22장 유다의 위대한 왕 ‘요시아’가 나옵니다.(BC 641-610) 아버지 아몬의 암살로 인하여, 어린 나이에 왕위를 이어 받은 ‘요시아’ 왕의 통치 초기는 혼란자체였습니다. 그때의 상황을 잘 들려주는 곳이 ‘스바냐’입니다. 예언자 ‘스바냐’는 당시 유다가 심판받아야 할 것들을 낱낱이 기록에 남기고 있습니다. 스바냐는 심판을 선언하지만 희망도 선포합니다.(습3:14-20절) 그 희망이 바로 ‘요시아’ 왕입니다. 요시아 왕의 가장 큰 업적은 성전을 수리 중에 ‘율법책’ 발견한 것입니다. 이 율법 책을 학자들은 ‘신명기’라고 말합니다. 이 율법 책을 발견하자 요시아 왕을 옷을 찢습니다. 율법책의 발견으로 요시아 왕은 가장 강력한 ‘종교개혁’을 단행하게 됩니다. 요시아의 개혁은 내일 23장에 나옵니다. 성전 수리로 발견된 ‘신명기’서는 이후에도 유다에 엄청난 영향력을 미칩니다.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온 에스라 느헤미야의 ‘종교개혁’의 기초가 되고, 유대 재건의 중심이 사상이 됩니다. 그만큼 율법책의 발견은 이스라엘 역사에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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