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왕기상20-열왕기하2장 | 권민철 | 2021-02-10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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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이 나를 살린다”(60강) : 열왕기상20-열왕기하2장 우리는 지금 이스라엘 역대 왕들의 이야기를 보고 있습니다. 구약학자들은 어느 종교에서도 찾아 볼 수 없는 왕들의 역사 이야기가 비교적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왕들의 이야기가 신앙적이기 보다는 분열과 전쟁과 우상숭배 이야기로 점철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신명기 역사가들은 자신들의 부끄러운 역사를 이렇게 낱낱이 들추어내고 있을까 질문하게 됩니다. 신명기 역사가들은 실패의 경험을 통해 ‘길’을 찾고자 했습니다. 실패만큼 좋은 길은 없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은 모든 것이 무너지는 바벨론 포로를 경험하게 됩니다. 그 후 바벨론 포로의 원인이 ‘왕들의 길’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러므로 이런 왕들의 역사를 낱낱이 기록에 남김으로써 역사의 반복을 막고, 하나님 앞에서 새로운 길을 찾고자 했던 것입니다. ※ 20장 20, 22장은 이스라엘과 시리아 사이에 일어난 전쟁이야기입니다. 이스라엘 왕조 초기에는 ‘블레셋’, 그리고 분열 왕국 때에는 ‘시리아’, ‘앗시리아’, ‘바벨론’ 순서로 이스라엘을 공격합니다. 기억하시면 역사를 이해하시는 데 큰 도움이 됩니다. 아합이 속한 ‘오므리’ 왕조 때, 이스라엘을 가장 괴롭힌 나라는 ‘다마스쿠스’를 중심으로 하는 ‘시리아’입니다. 시리아는 당시 북방민족 중에서 강력한 힘을 나라였습니다. 시리아의 ‘벤하닷’이 사마리아 성을 포위하자 아합은 모든 상황이 열세인 것을 감지합니다.(3-4절) 하지만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전쟁에서 승리를 거둡니다.(7-22절) 하나님은 ‘산 위의 신’이며, ‘평지의 신’이 아니기에 평지에서는 승리할 수 있다는 시리아를 완전히 무너뜨린 것입니다. 문제는 아합 왕이 시리아의 ‘벤하닷’과 정치적, 경제적인 조약을 맺고 돌려보내 주었다는 것입니다.(34절) 이 일은 결국 아합에게 화가 되어 돌아올 것임을 예언자가 말합니다.(35-43절) 아합의 잘못은 하나님이 주신 승리를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사용했다는 것입니다. “나의 부친이 왕의 부친에게 빼앗은 성들을 다 돌려드리겠습니다.”(34절) 솔깃한 제안에 넘어가고 만 것입니다. 하나님이 승리를 주는 전쟁에서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물질적 욕심’입니다. ‘아간’을 통해서 우리는 전쟁에서 취한 물질은 ‘고통’이 된다는 것을 이미 보았습니다. ※ 21장 엘리야의 세 번째 일화 ‘나봇의 포도원’ 이야기입니다. 아합 왕은 정원을 지으려고 나봇에게 포도원을 팔 것을 요구하지만 나봇은 거절합니다. 조상들에게 유산으로 받은 땅임으로 양도를 거절한 것입니다.(3-4절) 땅의 주인은 하나님이시며, 땅의 경계선을 옮기지 말라는 율법에 대한 신앙고백입니다. 이런 ‘나봇’을 ‘이세벨’이 거짓증언을 앞세워 죽입니다. 이 이야기는 바알 신앙이 실생활에서 어떻게 정착되고 있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물질적 풍요와 사유재산을 강조하는 바알 신앙이 힘 있는 자들의 마음을 움직이고, 그들은 백성의 소유를 거짓으로 빼앗습니다. 땅은 여호와의 것이기에 개인 소유를 거부하는 여호와 신앙이 물질적인 욕심 앞에 무너지고 있는 것입니다. 땅의 주인이 주님이라는 고백은 점점 사라지고 바알 신앙으로 인하여 땅의 주인이 바뀌고 있습니다. 엘리야는 이런 아합의 가문에 하나님의 심판을 선포합니다.(17-29절) ※ 22장 아합은 벤하닷이 조약대로 땅을 돌려주지 않자 남 유다의 ‘여호사밧’ 왕과 함께 시리아 공격을 결정합니다. 여기에서 ‘유다’와 ‘이스라엘’은 협력관계로 나옵니다.(2-4절) 어떤 관계일까요? 남 유다는 북 이스라엘이 멸망 때까지 큰 힘을 가질 수 없었기에 끌려 다닙니다. 그래서 유다의 여호사밧 왕은 자신의 딸 ‘아달랴’를 아합의 아들과 결혼시킴으로 협력관계를 유지하게 됩니다. (왕하8:18절) 전쟁의 출정을 두고 궁중 예언자 400명과 미가 예언자와의 다툼이 일어납니다.(6-28절 /여기에 ‘미가’는 ‘미가서’의 미가와 동일 인물이 아님) 궁중 예언자 400명은 국가권력에 순종하며 그들의 입맛에 맞는 예언을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통로가 되는 ‘예언’이 무너지고 있는 장면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바르게 전달하는 ‘미가’ 예언자가 있지만 감옥에 갇히게 됩니다. 아합 왕 때에는 더 이상 예언이 통하지 않는 세상이 되고 만 것입니다. 결국 아합은 ‘길르앗의 라못’ 전투에서 죽음을 맞이합니다. 아합의 아들 ‘아하시야’가 뒤를 이어 왕이 됩니다.(아하시야 BC. 850-849년) ※ 열왕기하 1장 엘리야의 네 번째 이야기는 이스라엘의 ‘아하시야’ 왕이 다친 이야기로 시작합니다. 아하시야는 도움을 받기 위해서 에그론의 ‘바알세붑’으로 사절단을 보냅니다. 사절단을 도중에 만난 엘리야는 그들에게 왕의 죽음을 선포합니다. 그 이유는 “이스라엘에 네가 말씀을 여쭈어 볼 하나님이 계시지 않더냐?”입니다.(16절) 하나님을 무시한 왕에게 하나님의 손길이 떠났다는 뜻입니다. 결국 아하시야는 죽고 그 아들 ‘여호람’이 왕이 됩니다.(BC. 849-843) 이스라엘에서는 하나님을 찾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 이야기의 핵심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신뢰가 무너진 세상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신뢰가 무너진 자리는 ‘아하시야’ 왕과 같은 결말만 남아 있다는 것입니다. 엘리야는 그것을 예언하고 있습니다. ※ 2장 엘리야의 마지막 이야기가 나옵니다. 엘리사가 엘리야의 마지막 때를 알고 스승을 따라다닙니다. 길갈 - 베델 - 여리고 - 요간 강까지 붙좇습니다. 결국 스승의 질문에 엘리사가 요구한 것은 ‘능력을 갑절’로 받게 해 달라는 것입니다. 그럼 엘리야의 능력은 무엇입니까? 회리바람을 타고 스승이 하늘로 올라가는 모습을 보면서 엘리사가 외친 말 속에 그 답이 있습니다. “나의 아버지! 나의 아버지! 이스라엘이 병거이시며 마병이시여!”(12절) 엘리사가 엘리야에 대해 내린 평가는 이스라엘의 ‘병거’와 ‘마병’이라는 것입니다. 실제로 엘리야는 바알 신앙에서 이스라엘을 지켜낸 ‘병거’이며 ‘마병’이었습니다. 그는 이스라엘에 살아 있는 여호와의 신앙의 소유자였습니다. 엘리사가 받기를 원했던 ‘갑절의 능력’이란 바로 이런 ‘신앙의 정신’입니다. 바알에게서 이스라엘을 지켜낸 신앙정신을 계승 받기 원했던 것입니다. 오늘날 물질이 세상을 지배하고 있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바알이 세상 곳곳에 아름다운 이름으로 포장되어 있습니다. 이런 세상에 엘리야처럼 여호와의 신앙을 지키려는 믿음이 절실한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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