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9장 | 권민철 | 2023-03-01 | |||
|
|||||
※ “새롭게 창조 됩시다” (1월 Q.T) - 요한복음 9장 9장은 눈먼 사람을 고치는 이야기를 통해, 진정으로 눈먼 사람이 누구인지를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길을 가시다가 예수께서는 나면서부터 눈먼 사람을 보십니다.(1절) 그런 눈먼 사람을 바라보시는 예수님의 시선은 제자들과 다릅니다. 제자들은 눈먼 것을 ‘죄’로 간주했습니다. 누군가의 불행을 ‘죄’로 연결시키는 것이 보편화되어 있는 세상의 모습입니다. 이런 시선들은 하나님이 만드신 소중한 생명을 죽게 만듭니다. 사람들과 달리 예수께서는 누구의 죄도 아니라고 하십니다.(2-3절) 다만 ‘하나님 일을 드러내기 위해서’라고 하십니다. 여기서 ‘하나님의 일’이란 누군가의 불행 앞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찾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이 일’이 됩니다. 누군가의 불행을 ‘죄’로 연결시키지 않고, 무엇을 해야 할까 찾는 사람이 주님의 마음을 가진 사람입니다. 예수께서는 침을 뱉고, 진흙을 개어, 눈먼 사람의 눈에 발라주십니다.(6절)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흙으로 창조하셨습니다. 진흙을 개어 눈에 발라주시는 행위는 새롭게 창조해 주시겠다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실로암으로 가서 씻으라고 하십니다.(7절) 실로암은 ‘보내심을 받았다’라는 뜻입니다. 요한복음에서 ‘보내심을 받은 자’는 ‘예수’이십니다. 고쳐주신 분이 예수 그리스도라는 것입니다. 눈먼 사람이 씻자 눈이 밝아집니다. 사람들이 ‘죄인’으로 덧씌운 사람이 새롭게 태어나는 순간입니다. 하지만 눈먼 사람이 눈을 뜨는 놀라운 사건 앞에서 사람들의 반응은 싸늘합니다.(9-12절) 생명의 변화에 기뻐하기보다 인정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예수가 하나님께로부터 보내심을 받은 자임을 인정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눈먼 사람을 ‘바리새파’ 사람에게로 데리고 갑니다.(13-41절) 이들이 바리새파 사람에게 데리고 간 것은 전문가의 의견을 듣기 위해서입니다.(13절) 그들의 말을 통해서 자신들의 생각이 틀리지 않음을 증명하기 위해서입니다. 율법의 전문가라는 바리새파 사람은 안식일에 병 고친 일에 주목합니다.(14절) 그리고 ‘안식일’을 지키지 않는 것을 보아서 예수는 하나님께로 온 사람이 아니라는 진단을 내립니다.(16절) 반복되는 바리새파 사람들의 오판입니다. 반대로 눈을 뜬 사람은 그분은 ‘예언자’라고 고백합니다.(17절) 이제 누가 눈뜬 사람이고, 눈먼 사람인지 느껴지십니까? 상황이 역전되었습니다. 자신의 지식으로 안다는 사람 그리고 그 지식을 빌려서 자신들의 생각을 곤고히 하려는 사람들은 앞에 그리스도가 있어도 보지 못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앞을 보지 못했던 사람은 봐야 할 것을 제대로 보고 있습니다. 겉으로는 보고 있어도 실상을 보지 못하는 사람을 ‘청맹과니’라고 부릅니다. 이 말씀을 통해서 우리 자신은 제대로 보고 있는지 스스로에게 질문해 보시기 바랍니다.
눈먼 사람의 부모가 소환됩니다.(18-23절) 눈 먼 사람의 부모까지도 눈뜬 것을 기뻐하기보다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습니다.(22절) 예수를 그리스도라고 고백하는 사람은 누구나 회당에서 쫓아내기로 유대 사회가 결의하였기 때문입니다.(22절) 한 사회를 통제하고 있는 율법의 힘을 느낄 수 있는 대목입니다. 힘 있는 사람들의 말과 권력에 두려움을 느끼는 순간 새로운 세상을 향한 눈은 감기고 맙니다. 하나님 나라는 이런 자들에게는 임하지 않습니다. 이제 이런 시비에 종지부를 찍는 눈이 멀었던 자의 고백이 나옵니다.(24-33절) “그 분이 내 눈을 뜨게 해 주셨는데도, 여러분은 그분이 어디서 왔는지 모른다니 참 이상한 일입니다.”(30절)라고 말합니다. 육체적의 눈만 밝은 사람들의 무지함을 지적하는 대목입니다. 그는 진정으로 눈먼 사람이 누구인지를 지적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어디서 왔는지를 모르는 사람이 ‘눈먼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는 “하나님께서는 죄인들의 말은 듣지 않으시지만, 하나님을 공경하고 그의 뜻을 행하는 사람의 말은 들어주시는 줄을, 우리는 압니다(중략)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부이 아니라면 아무 일도 하지 못하셨을 것입니다.”라고 말합니다.(31-33절) 그가 말하는 하나님을 공경하고, 그의 뜻을 행하는 분이란 바로 ‘예수’이십니다. 그리고 예수께서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분임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눈뜬 자의 말이자, 새롭게 창조된 자의 고백입니다. 주님을 믿는 우리들은 이 눈을 반드시 떠야 합니다. 본다고 하면서 보지 못하는 자들이 가장 어리석은 자입니다. 이 이야기의 결론으로 주님은 “나는 이 세상을 심판하러 왔다. 못 보는 사람은 보게 하고, 보는 사람은 못 보게 하려는 것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39절) 누구든지 어디로 와서 어디로 가는지를 알지 못하는 자, 하나님의 사랑을 감지하지 못하는 자는 눈 먼 사람이자 하나님의 심판의 대상입니다. 이제 주님이 보시기에 어떤 사람이 눈먼 자이고, 눈뜬 사람인지 감지하셨을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스스로 제대로 보고 있는지를 점검해 보시기 바랍니다. |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