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5장 | 권민철 | 2023-03-01 | |||
|
|||||
※ “새롭게 창조 됩시다” (1월 Q.T) - 요한복음 5장 베드자다 못 옆에서 38년 된 병자를 만나는 이야기가 나옵니다.(1-18절)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올라가셔서 찾으신 곳은 온갖 병자들이 누워있는 ‘베드자다’(자비의 집)입니다.(2절) 묵상가운데 후각을 사용해서 그곳의 ‘냄새’를 먼저 맡아보시기 바랍니다. 피하고 싶은 장소입니다. 예수께서는 큰 아픔과 간절함이 있는 곳을 피하지 않고 찾아가십니다. 당시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으로 많은 병자들이 베드자다 연못의 ‘전설’을 믿고 모여 있습니다. 천사가 내려와 물을 휘저어 놓은 뒤 가장 먼저 들어가는 자는 병이 낫는다는 전설입니다. 경쟁에서 이기는 자에게 하나님의 손길이 임한다는 이상한 ‘전설’이 ‘신앙’이 되어 있는 곳이 ‘베드자다’(자비의 집)의 현실입니다.(4절) 그곳에서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며,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지내는 38년 된 병자를 만나십니다.(5절) “낫고 싶으냐”라는 주님의 질문에 그는 ‘예’라고 대답하지 못하고 자신의 신세를 한탄합니다.(7절) 오랜 시간 병과 경쟁이 만든 한 인간의 모습입니다. 그런 그에게 “일어나 네 자리를 걷어 가지고 걸어가거라” 하십니다.(8절) ‘일어나 걸어라’는 말씀은 이제 주님의 말씀에 반응하라는 자가 되라는 뜻입니다. 사람이 만든 이상한 신화나 전설에 억매인 존재에서 벗어나서 당당히 하나님 앞에 서는 존재가 되라는 것입니다. 그를 하나님 앞에 아름다운 존재로 일으켜 세우십니다. 지금 우리는 성공이 전설이 되고, 신앙이 된 사회에 살아갑니다. 이런 사회가 위험한 것은 반대편에 서 있는 사람들을 하나님의 뜻과 무관한 사람으로 만든다는 것입니다. 교회는 이런 사람들을 일으켜서 하나님 앞에 세우는 곳입니다. 세상이 만든 신화나 거짓 신앙을 무너뜨리고,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사랑에 반응할 수 있는 존재로 만드는 곳이 교회입니다. 교회가 진정으로 ‘자비의 집’이 되어야 할 이유입니다. 병든 사람이 일어난 것을 유대사람들은 기뻐하지 않습니다.(10-18절) 안식일에 병을 고쳤다는 이유에서입니다. 생명보다 자신들의 신앙과 규범을 중요시 하는 사람들의 전형적인 모습입니다. 결국 그들은 예수님을 죽이려고 합니다. ‘안식일’을 범한 것과 하나님을 자기 ‘아버지’로 부른 이유 때문입니다.(18절) 생명을 살아난 일을 보고도 기뻐하지 못하고, 죽음을 생각하는 자들이 어떤 자들인지 눈여겨보시기 바랍니다. 종교와 신념을 생명보다 앞세우는 자들입니다. 이 일이 있은 후 이제 예수께서는 자신이 누구인지 밝히십니다.(19-30절) 요한복음의 기록 목적은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게 하려고 기록되었습니다.(21:31절) 이것을 염두에 두고 요한복음을 읽으셔야 합니다. 이제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른 자신의 정체성을 밝히십니다. 먼저 “아버지께서 하시는 일을 아들로 그대로 한다”라고 하십니다.(19절) 아버지의 일을 하는 것이 곧 아들이심을 증명한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아버지의 일이란 생명을 살리고, 생명을 풍성하게 하는 일입니다. 예수께서는 그 일을 통해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드러내십니다. 또한 “나는 아무것도 내 마음대로 할 수 없다”(19절) 라고 하십니다. 아버지 앞에 자신을 온전히 맡기는 모습을 통해 자신을 드러내십니다. 또한 아버지를 공경한다고 말씀하십니다.(23절) 공경이란 존귀한 이름을 더럽히지 않는 것과 동시에 함부로 부르지 않는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삶으로 그것을 보여주셨습니다. 결과적으로 이런 삶을 통해 사람들로 자신을 보낸 하나님을 믿고 영생을 얻게 하려고 하신 것이 아들의 뜻입니다.(24절) 이것이 아들의 정체성입니다. 죽은 자들을 살리는 일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신 것입니다.(25-38절) 더 나아가 예수께서는 자신의 뿌리가 어디인지를 분명히 말씀하십니다.(31-47절) 예수 그리스도의 뿌리의 근거는 “하나님이 보내셨다”는 것입니다.(37절) ‘보내셨다’는 것은 뜻을 품고 이 땅에 오셨다는 의미와 함께 다시 돌아간다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자신이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를 아는 것을 ‘뿌리의식’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주님은 자신의 뿌리가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일들을 통해서 증명하셨습니다.(36절) “아버지께서 나에게 완성하라고 주신 일들, 곧 내가 지금 하고 있는 바로 그 일들이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셨다는 것을 증언하여 준다”라고 하십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오셔서 하신 일들로 자신을 증명하셨습니다. 그럼 주님도 ‘뿌리의식’을 가지고 사셨다면 우리의 ‘뿌리의식’은 무엇일가요?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것입니다.(39-43절) 예수 그리스도를 온전히 마음으로 영접하는 것입니다. 참 생명을 주시기 위해 이 땅에 오신 예수그리스도를 진심으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이 마음만 있으면 됩니다. 이것이 요한복음이 기록된 목적이요, 복음서를 읽는 목적입니다. -아멘- |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