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2장 | 권민철 | 2023-03-01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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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롭게 창조됩시다(1월 Q.T) - 요한복음 2장 2장에서는 ‘가나의 혼인 잔치’이야기와 ‘성전청결’ 사건이 나옵니다. 1) 가나 혼인잔치(1-13절) ‘사흘째 되는 날’로 이야기가 시작됩니다.(1절) 여기서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은 성경에 나오는 날짜는 대부분 앞에 사건과 연결시키기 위해서 사용됩니다. 앞에 사건은 ‘나다나엘’이 예수를 만난 이야기입니다. 예수께서 나다나엘에게 “더 큰 일을 네가 볼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50절) 나다나엘이 볼 더 큰 일은 어떤 것일까요? 이제 예수께서는 나다나엘의 고향(요21:2) ‘갈릴리 가나’로 가십니다.(1절) 그곳에서 예수께서는 첫 번째 ‘표징’(헬, 세메니온)을 행하십니다. 바로 혼인잔치에서 물이 포도주로 변하는 사건입니다. ‘요한복음’을 읽을 때 기억해야 할 것은 다른 복음서와 다르게 ‘이적’이란 표현을 쓰지 않고, ‘표적’이라는 표현을 씁니다. 표적이란 의미는 무엇인가를 드러내기 위해 일어난 사건이란 의미입니다. 요한복음에 나오는 7가지 표적은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임을 드러내기 위해서 일어난 표징임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가나 혼인잔치 이야기의 메시지도 여기에 있습니다. 가나 혼인잔치의 핵심은 포도주가 떨어져 자칫 무너질 수 있었던 잔치자리가 물이 포도주로 변화됨으로써 축제의 자리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 의미는 예수를 만나서 영접한 사람은 그로 인하여 변화를 경험하고, 무너져가던 삶이 축제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혼인잔치는 남, 여가 ‘언약’을 맺는 자리입니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언약관계가 혼인잔치입니다. 이 상징적인 혼인잔치를 통해서 하나님과 인간의 새로운 ‘언약’ 관계를 보여주십니다. 지금까지 하나님과 관계는 율법이란 ‘언약’으로 유지되어 왔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이것은 인간에게 변화와 기쁨보다 무거운 의무와 짐이 되었습니다. 예수께서 오셨을 때 당시 유대교의 실상입니다. 이제 예수께서는 ‘자신을 통하여’ 하나님과 ‘새로운 언약’을 맺어주시겠다는 상징적인 사건이 가나 혼인잔치 이야기입니다. 그 언약은 물이 포도주로 변해서 축제의 자리가 되었듯이, 우리를 새로운 길로 인도하여 삶을 기쁨과 축제로 만들어 주시겠다는 말씀입니다. 혼인잔치의 주인공은 신랑, 신부입니다. 그런데 이 이야기 속에는 신랑, 신부가 등장하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그 주인공이 예수 그리스도이시기 때문입니다. 예수께서는 하나님과 우리를 자신의 대속의 피로 연결시켜 주시는 ‘언약’이 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혼인잔치의 주인은 예수그리스도이십니다. 꼭 기억합시다. 우리 삶을 이전보다 더 좋은 삶으로 만들어 구원하실 분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영국의 위대한 시인인 조지 고든 바이런은 가나 혼인 잔치를 시로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물이 그 주인을 만나니 얼굴이 붉어지더라.”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 때문에 우리도 이렇게 되기를 소망합니다. 2. 성전정화(13-22절) 다른 복음서에서는 성전정화 사건이 예수의 십자가 사건 바로 직전에 나오지만 요한복음서에는 앞쪽에 나옵니다. 그렇다면 이 이야기를 통해서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무엇일까요? 가나 혼인잔치처럼 삶을 잔치자리로 만드는데 가장 큰 걸림돌은 무엇일까, 라는 질문을 요한은 던지고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율법으로 하나님과 언약을 맺고 있는 성전체제입니다. 인간의 삶을 포도주처럼 변화시키지 못하는 종교체제는 이제 무너져야 한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따뜻하고 온화하신 예수께서 성전에 들어가시자 노끈과 채찍으로 우리가 상상하는 그 이상으로 화를 내시며 돈을 쏟아 버리시고, 상을 둘러엎으십니다.(15절) 당시 사람들은 성전에 흠 없는 제물을 제단에 드리기 위해서는 먼저 성전에서 특별히 제작한 돈으로 바꾸고 난 뒤 그들이 파는 제물을 사서 제단에 드려야 했습니다. 돈을 바꾸고 제물을 파는 일로 성전의 지도자들은 엄청난 부를 챙겼습니다. 반대로 반드시 제사를 드려야 하나님과 언약관계를 유지한다고 믿는 사람들은 성전에 나오는 것이 기쁨이 아니라 엄청난 부담이 되었습니다. 이제 이런 성전체제는 이제 무너져야 합니다. 예수님은 성전에 있는 모든 것을 둘러엎으시고 난 뒤 “이 성전을 허물라. 그러면 내가 사흘만에 다시 세우겠다”라고 외치십니다.(19절) 참 놀랍고, 큰 울림이 되는 외침입니다. 이제 예수 그리스도 자신이 성전이 되어서 백성들과 하나님과의 관계의 새롭게 맺어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성전에서 드리는 ‘제물’ 보다 훨씬 값진 자신의 몸을 드려서 하나님과 새로운 언약을 맺어주시겠다는 의미입니다. 진정한 성전은 예수 그리스도시라는 것을 보여주시는 장면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생명을 살려주시기 위해서 스스로 자신의 몸을 제물로 드리신 분이십니다. 그래서 그리스도가 성전이십니다. 이렇게 하신 이유는 바로 우리가 하나님과 바른 언약을 맺어서 삶이 포도주처럼 변화되고, 삶이 축제가 되기를 바라시기 때문입니다. 이런 예수님의 사랑이 깊이 느껴지시는 2장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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