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1장 | 권민철 | 2023-03-01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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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롭게 창조됩시다(1월 Q.T) - 요한복음 1장 새해부터 ‘요한복음’을 읽기로 결심한 여러분들에게 하나님의 크신 은총이 넘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요한복음 1장1절은 “태초에 말씀이 계셨다. 그 말씀은 하나님과 함께 계셨다. 그 말씀은 하나님이셨다.”라고 시작합니다. 천지를 말씀으로 만드신 하나님을 알 수 있는 길은 오직 ‘말씀’뿐이라는 뜻입니다.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을 깊이 체험하시는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은 말씀으로 세상을 만드신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그 분의 뜻은 무엇인지, 그분에게 이르는 생명의 길이 어떤 길인지를 가르쳐 주시기 위해서 ‘말씀이 육신’이 되어오셨습니다. 요한복음 읽기를 통해서 그 예수님과 꼭 만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요한복음은 다른 복음서와 다르게 기록 목적을 분명히 밝히고 있습니다. “여기에 이것이나마 기록하는 목적은 여러분으로 하여금 예수가 그리스도요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게 하고, 또 그렇게 믿어서 그의 이름으로 생명에 이르게 하려는 것입니다.”라고 말합니다.(요20:31절) 말씀이 육신이 되어 오신 예수를 믿고, 생명에 얻게 하려고 기록했다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읽기를 통해서 믿음이 굳건해지고 참 생명을 얻는 여러분 되시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 요한복음 1장 요한복음1장은 1-51절까지 조금 깁니다. 2장부터는 그렇지 않습니다. 간단히 4단락으로 나눠서 말씀드리겠습니다. 1. 말씀이 육신이 되어(1-18절) 요한복음은 다른 복음서와 다르게 예수님의 탄생 이야기가 없고, 예수의 오심을 ‘말씀’이 ‘육신’이 되어 오셨다고 소개합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오신 예수님은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그에게는 생명이 있었고’, ‘그 생명은 사람들에게 빛이 되었다’고 말합니다.(2-4절) 빛의 역할은 보게 하는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스스로 빛이 되셔서 생명에 이르는 길을 보여주기 위해서 오셨다는 뜻입니다.(7절) 명확하게 예수의 오신 이유를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참 빛’으로 오신 주님을 대하는 세상의 태도입니다. 세상은 그를 알지도 못했고, 맞아들이지도 않았습니다.(10-11절) 이 말씀은 모두가 ‘참 빛’을 보기 원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사람들에게는 오징어 ‘집어등’처럼 자신을 유혹하는 매력적인 빛들이 각자에게 있습니다. 죽이려고 비추는 ‘집어등’에 유혹 당하는 오징어처럼 세상에 빛에 유혹당하는 자들은 참 빛을 거부합니다.
이런 세상을 향해 요한은 놀라운 선포를 합니다. “맞아들이는 사람, 그 이름을 믿는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특권을 주셨다.”라고 말입니다.(12절) 주님을 영접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특권’이 있습니다. 여기서 ‘특권’이라는 말은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갈 능력을 의미합니다. 또한 하나님의 자녀는 ‘혈통에서나’, ‘육정에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않는다고 요한은 분명히 말합니다.(13절) ‘혈통’은 아브라함의 자녀라면 당연히 하나님의 자녀라는 생각을 말합니다. ‘육정’은 바리새파 사람들처럼 율법을 열심히 실천하는 것을 말합니다. ‘사람의 뜻’은 인간의 이성과 철학과 교육을 뜻합니다. 당시 유대인들에게 하나님의 자녀는 이런 의미였습니다. 하지만 요한은 당시 고정되고, 토착화된 관념을 깨뜨리고 하나님의 자녀는 주님을 영접하는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우리에게는 익숙한 말씀이지만 당시에는 유대 사회가 받아들일 수 없는 혁명적인 선포입니다. 2. 세례요한(19-34절) 예루살렘의 최고 권위를 가진 ‘산헤드린 공의회’에서 요한에게 사람을 보내어 “당신은 누구냐”라고 묻습니다.(19절) 요한은 자신이 ‘그리스도’, ‘엘리야’, ‘예언자’가 아니라고 대답합니다.(20-21절) 요한은 당시 산헤드린 공의회에서 사람을 보낼 만큼 많은 사람들이 그를 추종했고, 그리스도, 엘리야, 예언자라고 여겼던 사람입니다. 하지만 요한은 최종적으로 자신을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 주님의 길을 예비하는 자’라고 소개합니다. 요한은 진정으로 “광야에서 외치는 소리”였습니다. 자신을 드러내지 않으면서도 삶으로 내는 소리를 우리는 ‘참 소리’라고 말합니다. 요한은 광야에서 회개를 외치며, 겸손히 사람들에게 물로 세례를 주며 새로운 길로 인도한 ‘참 소리’였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여자가 낳은 자 중에 가장 큰 자라고 요한을 평가했습니다. 삶을 제대로 살지도 못하면서, 자신을 들어내는 소리를 ‘소음’이라고 말합니다. ‘소리’와 ‘소음’의 차이는 삶에 있습니다. ‘소음’으로 가득찬 세상에 ‘참 소리’를 낸 사람이 바로 세례요한이었습니다. 이제 자신을 찾아오는 예수를 향해 요한은 모두가 들어야 할 참 소리를 냅니다. “보시오,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입니다.”라고 말입니다.(29절) 이 ‘참 소리’는 우리가 참으로 믿어야 할 소리요, 우리가 세상을 향해 외쳐야 할 소리입니다. 이 소리를 꼭 가슴에 새기시기 바랍니다. 3. 제자를 부르심(35-42절) 다섯 명의 제자를 부르시는 장면이 소개됩니다. 예수께서 제자를 부르실 때 특징을 눈여겨보시기 바랍니다. 주님의 제자 되기 너무 쉽다는 생각이 듭니다. 길을 가다가 예수를 보고 따라갔고, 형제에게 소개시켜주는 형식입니다. 무슨 말일까요? 하나님이 만드신 사람에게는 누구나 제자의 길이 열려 있다는 의미입니다. 특별한 능력이나 자격이 없어도 됩니다. 누구나 따르고 싶은 마음만 있으면 된다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자신을 따르는 요한의 두 제자에게 “너희는 무엇을 찾고 있느냐?”라고 묻습니다.(38절) 예수님이 처음으로 입을 열어 던진 이 질문은 지금 예수를 믿는 우리 모두가 자신에게 던져야 할 질문입니다. 이 질문에 요한의 두 제자는 “랍비님 어디에 묻고 계십니까?”라고 반문합니다. 이 대답은 ‘따르겠습니다’는 유대인들의 관용어구입니다. 예수님을 따르려는 사람은 특별한 자격이 아니라 요한의 제자들처럼 따르겠다는 결심만 있으면 됩니다. 그러면 베드로처럼 반드시 ‘반석’으로 만들어 주십니다.(42절) 4. 나다나엘(43-51절) 나다나엘 이야기도 다른 복음서에는 나오지 않습니다. 다른 복음서에 기록되지 않은 나다나엘 이야기를 요한이 기록하고 있다면 분명한 이유가 있습니다. 그 메시지는 무엇일가요? 나다나엘 이야기는 야곱이야기와 연결시켜서 봐야합니다. 나다나엘에게 “이 사람은 참 이스라엘 사람이라”(47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천사들이 인자 위로 오르락내리락하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라고 주님이 말씀합니다.(51절) 이 말씀은 야곱의 이야기와 연관되어 있습니다. 구약에 나오는 야곱은 하나님을 만난 후 ‘이스라엘’이 되었고, 하늘을 오르락내리락하는 꿈을 꾼 사람입니다. 빌립이 나다나엘을 만나서 예수님을 소개하자 나다나엘은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나겠느냐?”라고 강하게 반발합니다. 나다나엘의 이런 반응을 보시면 자신의 고집과 의지와 생각으로 살았던 야곱의 그림자가 보입니다. 그런 나다나엘이 예수를 만나자 결국 “선생님, 선생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오, 이스라엘의 왕이십니다.”라는 고백을 합니다. 이런 고백을 하는 나다나엘에게 주님은 야곱처럼 천사가 오르락내리락하는 천상의 체험을 하게 될 것이라고 말해 준 것입니다. 주님의 제자가 된다는 것은 이런 것입니다. 야곱과 나다나엘처럼 강한 고집과 자신의 생각으로 살던 삶을 내려놓는 것입니다. “주님을 믿으면 무슨 선한 것을 얻겠느냐”, “예수께 무슨 선한 것이 나오겠느냐?” 등의 이유로 주님을 외면하며 사는 것이 인간의 일상입니다. 이런 단단했던 삶을 주님 앞에 내려놓는 것입니다. 지금도 빌립이 나다나엘에게 했던 ‘와서 보십시오’라는 말은 유효합니다. 우리 내면 깊은 곳에 나다나엘과 같이 신앙에 깊은 불신이 있다면 ‘와 보라’는 주님의 말씀 앞에 순종해 보시기 바랍니다. 이번 말씀 읽기를 통해 주님 앞으로 한 번 가 봅시다. 나다나엘에게 “더 큰 일을 볼 것이다”라는 주님의 약속이 여러분 삶에 이루어질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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