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5장 | 권민철 | 2022-07-13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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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르심의 153, 회복의 153” - 마태복음 5장
마태복음5-7장까지를 ‘산상수훈’이라고 부릅니다. 총106구절도 되어 있는 산상수훈은 인류의 정신사에 가장 소중하고 아름다운 보물입니다. 힌두교인이었던 간디는 그리스도인은 아니지만 , 그의 비폭력 운동의 원동력은 바로 ‘산상수훈’이라고 했습니다. 1-12절까지는 8복의 말씀입니다. 팔복의 말씀부터 나옵니다. 팔복의 말씀은 내용도 중요하지만 외우시면 좋습니다. 다음으로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라는 엄중한 선포가 나옵니다. (13,14절) 예수님은 “너희는 세상에서 소금처럼, 빛처럼 살아라.”라고 하시지 않고,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라고 선포하십니다. 이 말씀은 지금 우리에게 유효한 말씀입니다. 존경하는 목사님은 “초는 자기 몸을 태워서 빛을 발하고 사람은 이웃 때문에 애를 태워 빛을 바란다.”라고 했습니다. 소금은 맛을 내는 역할과 동시에 썩지 않게 하는 역할을 합니다. 부족하지만 세상에 나가서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해야 합니다. 빛과 소금의 역할이란 자신을 녹이고 태우는 희생을 통해서 타인을 살리는 길이 빛과 소금의 길입니다. 율법에 대한 소중한 교훈이 나옵니다.(마5:17-20) 중요한 구절은 “내가 율법이나 예언자들의 말을 폐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아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라, 완성하러 왔다.”입니다.(17절) ‘완성’이란 말을 어렵게 해석하지 않아도 됩니다. ‘완성’에 담긴 의미는 ‘실천’입니다. 예수님은 율법을 ‘실천’하기 위해서 오셨다는 말씀으로 들으시면 됩니다. 여기서 우리가 꼭 새겨야 할 것은, 율법에 대한 예수님의 입장은 율법의 재해석입니다. 율법 실천은 율법의 뜻을 제대로 알아차리는 일에서부터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당시 바리새파나 율법학자들은 하나님이 주신 소중한 율법을 사람을 분리하고 억압하는 도구로 많이 사용하였습니다.(유대인/이방인, 남자/여자, 종/자유인) 바울도 결국은 이런 율법 해석을 반대했습니다. 그래서 바울도 율법의 완성을 ‘이웃 사랑’이라고 외쳤던 것입니다. 이제 예수님이 하신 율법에 대한 일곱 가지 재해석이 나옵니다. 먼저 살인에 대한 교훈이 나옵니다.(21-22절) 예수님은 “살인하지 말라”는 옛 계명을 “형제에게 성내거나 모욕하지 말라”는 교훈으로 재해석 하십니다. 살인하는 일은 쉽게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래서 다들 이 계명과 자신은 멀어져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살인을 생명을 거두는 일로 한정하지 않습니다. 누군가의 생명을 함부로 대하는 태도나 언어의 폭력은 또 다른 살인의 형태라고 재해석하신 것입니다. 또한 “그러므로 네가 제단에 제물을 드리려고 하다가, 네 형제나 자매가 네게 어떤 원한을 품고 있다는 생각이 나거든 너는 그 제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네 형제나 자매와 화해하여라”(마5:23-24절)라고 하십니다. 살인에 대해서 두 번 언급하는 것은 그만큼 소중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살인의 정의를 넓게 해석하십니다. 타인을 함부로 대하는 태도, 언어적인 폭력은 누군가의 생명을 빼앗는 일임을 명심하라는 것입니다. 음욕과 간음에 대한 재해석입니다.(마5:27-28) 이 말씀의 핵심은 사람을 쾌락 충족을 위한 수단으로 대하는 것에 대한 경계입니다. ‘음욕’은 ‘음행’의 입구라고 합니다. 그러기에 음욕이 생길 때 눈을 빼버리고, 손을 찍어 내어버리는 것처럼 경각심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가혹하게 들리지만 그 정도의 경각심을 갖지 않으면, 언제라도 죄에 팔릴 수밖에 없음을 예수님 잘 아시고 계십니다. 이혼과 간음에 대한 재해석입니다.(5장31-32절) 1세기 팔레스타인에서 버림받은 여인들의 삶은 광야로 내 쫓긴 하갈의 처지와 다를 바 없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여인들이 당하는 이혼에 대해 재해석을 하십니다. 남성들에 의해 언제라도 유린당할 수밖에 없는 여성들의 입장에 서서 사고할 것을 요구하십니다. 여기서 주목해서 봐야 할 것은 간음의 범위가 확장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여자를 버린 것도 ‘간음’이요, 그런 여자를 쉽게 결혼하는 것도 ‘간음’이라고 하십니다. 이 말씀의 핵심은 남성들을 향한 말씀이며, 간음의 범위에 남성들이 들어간다는 것입니다. 놀라운 확장입니다. 맹세에 대한 재해석입니다.(5장33-34절) 예수님은 맹세하지 말라는 말씀을 넘어 ‘아예’ 맹세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여기에는 말에 신뢰가 잃어버린 세상을 향한 메시지입니다. 자신의 말을 강화하기 위해서 하늘, 땅, 예루살렘, 자기 머리를 두고 맹세하지 말 것을 요구하십니다. 자신의 말을 강화하고, 내세우기 위해서는 어떤 맹세도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오늘날 자신의 말이 옳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 전문가, 교수, 언론 등이 인용됩니다. 타인을 궁지에 몰아넣기 위해서 인용되는 것이 바로 ‘맹세’가 됩니다. 예수님은 이런 것을 아시고 ‘아예’ 맹세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보복(폭력)에 대한 재해석입니다.(마5장38-40) 서로를 지키기 위해서 만든 법으로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아라.’라는 율법의 말씀을 이제 예수님은 새롭게 해석하십니다. 힘을 길러 ‘보복’함으로 ‘평화’를 유지할 수 있다는 이론을 무너뜨리십니다. “악한 사람에게 맞서지 말고, 오른쪽 뺨을 치면 왼쪽 뺨마저 돌래 대어라. 속옷을 요구하면 겉옷까지 내어주어라. 억지로 오리를 가자고 하면, 십 리를 같이 가주어라.”라고 하십니다. 참으로 놀라운 말씀입니다. 하나님께 뿌리는 둔 사람의 무기는 오직 ‘사랑의 무기’뿐입니다. 사랑의 무기를 든 사람은 어떤 힘으로 짓눌려도 짜부라지지 않는 능력이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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