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기상 4장 9-10절 | 권민철 | 2020-09-29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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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칼럼의 주인공은 ‘야베스’입니다. 야베스의 어머니는 아들의 이름을 야베스라고 짓습니다. 뜻은 ‘고통’입니다. 얼마나 힘겨웠으면 아들 이름을 이렇게 지었을까? 야베스는 어쩌면 고통이라는 숙명을 타고났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는 자기의 숙명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그는 하나님 앞에 엎드려 두 가지를 청합니다. 자기 삶의 지평을 넓혀 달라, 환난에서 벗어나 근심 없이 살게 해 달라는 것입니다.
이 기도를 이해하기 위해서 우리는 한 가지 사실에 주목해야 합니다. 역대기는 바벨론 포로생활에서 귀환한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척박한 땅을 개간하고, 호의적이지 않은 이웃들과 늘 대면하며 살아야 했습니다. 삶은 힘겨웠고, 미래는 어두웠습니다. 그런 현실을 너무나 잘 아는 역대기서의 저자는 ‘야베스’라는 인물에 주목합니다. 당시 하나의 모범적인 사례로 보였던 것입니다.
믿음이 반대말은 ‘숙명론’입니다. 물론 세상에는 우리가 아무리 노력해도 바꿀 수 없는 것들이 있습니다. 있는 그대로 수용하는 것이 지혜로운 처사일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바꿀 수 있는 일이라면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야베스의 기도의 핵심은 숙명이 너울을 벗어던지고, 자신의 삶을 새롭게 하기 위해 하나님 앞에 엎드리며, 몸부림치는 한 사람의 아름다운 모습을 그려내고 있다는 것입니다.
벌써 9월이 문을 닫고 있습니다. 동시에 코로나의 공포도 7개월이나 되었습니다. 서서히 코로나가 인간이 벗어날 수 없는 숙명처럼 느껴집니다. 불편함을 느꼈던 마스크나 체온감지, 출입카드 정도는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입니다. 잘 대처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때 쯤, ‘아베스’처럼 숙명처럼 여겼던 것들을 벗어던지고 새로운 삶을 위해 하나님 앞으로 나가면 어떨까요? 운명을 숙명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운명을 새로운 도전의 가치로 만드는 ‘기도자’로 말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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